2026 매일성경 Q.T

2026년 3월 7일(토) 솔내 군인교회 매일 성경 Q.T

솔내교회 2026. 3. 7. 05:58

202637() 말씀과 함께하는 솔내교회 용사들

 

Ⅰ. 말씀_ 요한복음 11:17-27.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Ⅱ. 해설

 

17-20(예수님의 베다니 방문)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 된 상태였습니다. 장례는 보통 사망 직후에 뒤따랐지만 어떤 후대 유대 문헌들은 영혼이 사흘 동안 몸 위를 맴돌며 몸속에 다시 들어가기를 희망하다가 포기하고 떠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무덤에 안치된 이 기간은 39절에서도 반복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그가 단지 병든 상태가 아니라 실제로 죽었음을 강조합니다. 요한은 베다니가 예루살렘에서 한 오리 쯤 떨어져 있다고 알려주며 사실상 이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모습을 드러내며 이후 펼쳐질 나사로 사건이 마지막 예수님의 표적이 될 십자가 사건의 그림자가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17-18). 많은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의 죽음을 위문하러 왔습니다(19).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분노가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각심을 불러옵니다. 예수님께서 방문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마르다는 곧 나가 맞이하고 마리아는 집에 않아 있었습니다(20).

 

21-22(마르다의 믿음)

마르다의 말들은 예수님에 대한 비난으로 의도되지 않고, 단순히 그녀의 비통함을 표현합니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을 도와주실 수 있는 예수님의 대한 확신을 보여줍니다(21). 그녀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다면 나사로를 죽음에서 구하셨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부가적인 진술에서 마르다가 예수님께서 청하시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녀의 오라비인 나사로의 죽음이 마르다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22).

 

23-27(부활 생명이신 예수님)

마르다의 믿음에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 화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은 현재적으로는 나사로의 소생과 관련되고, 미래적으로는 종말의 있을 그의 부활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후자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23-24). 이와 같은 마르다의 믿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리새인들의 믿음과 일치합니다(5:21, 25-29, 6:39-44, 54; 23:8 참조). 예수님께서는 단지 부활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분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 선언하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과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의 참된 영생은 예수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예수님 안에서 구현되며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믿는 이란 말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현재적으로 경험할 뿐만 아니라, 죽음이후 하나님과의 무한한 친교의 삶으로 영원히 이어집니다. 이것은 나사로처럼 현재 무덤에 있는 자들이나, 여전히 살아 있는 자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선언은 오직 부활하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수단으로 믿음을 통해서만 장차 임할 시대의 풍성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이미 성령의 능력으로 시작되었고, 우리 몸의 부활 때에 그 정점에 이를 것입니다(25-26, 6:3-11; 3:1-3 참조).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대답합니다. 마르다의 대답에서 세상에 오시는 이라는 표현은 시 118:26에 나오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곧 유대 민족의 모든 희망이 예수님 안에 성취된다는 고백입니다. 이와 함께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마르다의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과 병행하며 요한복음의 목적을 동시에 보여줍니다(27, 20:31 참조).

 

Ⅲ. 적용, 결단 및 기도

 

예수님은 단지 부활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선언하십니다. 그를 믿는 자는 죽음 가운데서도 참된 생명과 영원한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이와 같은 영적 현실 가운데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는 풍성한 생명을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게 누리게 하시고, 장차 완전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며 주를 신실하게 따르게 하소서. 아멘.

 

Ⅳ. 더 깊은 묵상으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아멘.

 

참고: Bibleworks 10, ESV 스터디바이블(요한복음), 개혁주의스터디 바이블(요한복음), 맥아더 성경주석(요한복음), 매튜헨리 주석(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36(요한복음), 관주해설 성경(대한성서공회), 묵상과 설교(2026년 3-4), 성서유니온선교회(s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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