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일(주일) 말씀과 함께하는 솔내교회 용사들
Ⅰ. 말씀_ 요한복음 1:1-18.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Ⅱ. 해설
요한복음 1:1-18은 19절에서 시작되는 네러티브의 프롤로그입니다. 이 단락은 복음서의 핵심이 되는 등장 인물(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창조주)과 생명, 빛과 어둠, 증언, 거절과 수용, 하나님에게서 남, 진리 등 여러 주제를 소개합니다. 이 여러 주제 가운데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1-5(태초에 말씀이 계심)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창세기의 첫 구절을 상기시키며, 태초의 창조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요한은 이 말씀의 정체를 예수로 밝히지만, 여기서 예수님의 존재를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영원 전 과거에서 발견합니다(1-2). 말씀이라는 단어는 신적인 자기 표현 내지 발화의 개념을 전달하며 풍부한 구약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만물이 생겨나며(창 1:3, 9; 시 33:6, 107:20; 사 55:10-11 참조), 하나님은 말씀으로 자기 백성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십니다(창 15:1 참조). 또한 요한은 말씀에 대한 이런 개념이 우주에 질서를 부여한 이성이라고 하는 비인격적인 한 원리로서의 로고스라는 헬라 철학 개념보다 어떻게 더 우월한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이 말씀은 예수의 신성을 관련된 표현으로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첫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교리는 말씀(헬_로고스)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신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삼위일체 교리와도 이어지는 기본적인 원리이기도 합니다. 참된 한 하나님은 한 인격 이상으로 이루어지며 이 인격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언제나 존재하셨습니다. 고대 교회의 교부시대(아리우스, 주후 256-336)부터 현재 여호와의 증인까지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데오스)에 정관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헬라어 문법에서 콜웰의 법칙은 신적인 존재(a god)라는 번역이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관사가 없다는 것은 반드시 부정성(否定性)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단어(하나님)가 한정된 주어(그 ‘말씀’)의 술어 주격임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헬_데오스)의 의미는 문맥으로 결정해야 하며, 문맥상 요한이 말하고 있는 이 하나님(말씀)은 만물을 창조하신 참된 한 하나님임을 보여줍니다(1:6, 12, 13, 18 참조). 만물의 모든 것이 다 그분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만물은 온 우주를 포함하며 하나님을 제외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가리킵니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 또한 말씀이 지닌 신성에 대해 강조합니다(3, 골 1:16-17; 히 1:2; 계 4:11 참조). 요한은 생명, 빛, 어둠에 대한 창세기의 테마를 이끌어 옵니다(창 1:3-5, 14-18, 20-31, 2:7, 3:20; 사 9:2, 42:6-7, 49:6, 60“1-5; 말 4:2; 눅 1:78-79 참조). 이런 배경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에 참된 지식, 거룩함,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빛을 가져 오십니다(4-5).
6-8(세례요한의 증언)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자로 묘사합니다. 세례요한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맨 마지막 인물입니다(6). 세례 요한의 등장으로 계시의 암흑기(약 400년)가 끝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은 빛을 증언하러 왔습니다. 여기서 증언, 또는 증언하다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고, 주의 길을 예비하게 위해 앞서 보냄 받은 소리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어떤 문제의 사실성이 다수 증인을 통해 확정되는 구약 재판정에 적용됩니다(신 17:6, 19:15 참조). 그의 증언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조로 믿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7-8).
9-13(참 빛이 세상에 옴)
참 빛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각시키는 표현입니다. 이 빛은 단순히 일시적이거나 땅에 속한 것과는 상반되는 의미에서 영원한 것 또는 하늘에 속한 것을 가리키기 위해 종종 사용됩니다(4:24, 6:32 참조). 이 빛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핑계대지 못할 만큼 충분한 빛을 비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양심이라는 일반 계시를 통해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일반 계시는 구원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빛으로 사람을 이끌거나 그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롬 1:19-20, 2:12-15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이 사람 안에 심어 놓으신 빛의 완성이요, 그 빛이 사람의 몸을 입은 것입니다(9-10).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첫 번째 자기 땅은 온 인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두 번째 자기는 유대로 보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온 세상은 창조주인 그리스도의 소유이지만, 세상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그리스도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유대인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나타나심을 성경의 증언을 통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사 65:2-3; 렘 7:25 참조). 유대인들이 약속된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한 사실은 요한복음에서 특별한 강조점이 됩니다(11). 영접이란 예수님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뿐 아니라 인격적 관계 속에서 전인격적으로 맞아들이는 것으로 예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 다는 것은 인격적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 이름은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참되고 진실한 것을 가리키며 따라서 예수님의 인격 전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 가운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딛 3:5; 요일 2:29 참조).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의 가능성을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확장합니다(12-13).
14-18(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
1절에서 나온 그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는 피조 되지 않은 영원한 존재이지만, 인간성을 취하셨음을 강조합니다(히 1:1-3, 2:14-18 참조). 무한한 분이 유한하게 되었고, 영원하신 분이 시간 속에 들어왔으며, 볼 수 없는 분이 보이게 되었고, 초자연적인 분이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축소시킨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 성육신의 사건은 하나님이 아니니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딤전 3:16 참조). 거하신다는 표현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에 거주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출 25:8 참조). 구약에서 장막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하였습니다(출 40:34; 왕상 8:10 참조).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 영광스러운 임재가 말씀 안에 나타나게 됩니다(골 2:9 참조). 그분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를 묘사하는 용어와 상응합니다(창 24:27; 시 25:10, 26:3; 잠 16:6 참조). 육신이 되신 말씀은 언약을 수립하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성품을 온전하게 나타내 보이십니다(14). 세례요한의 사역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선행하지만, 영원하신 존재로서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세례 요한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15, 8:58 참조). 요한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은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나타났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대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계시로 나타나셨습니다(16-17). 아버지의 품속에 있다는 표현은 성삼위 상호 간의 친밀성과 사랑, 지식의 내재적 경륜을 가리킵니다(13:23; 눅 16:22-23 참조).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시며 형체가 없으십니다(딤전 6:16 참조).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그리스도는 어떤 비교나 유비로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이지 않으시는 이를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내셨습니다(18).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며, 인류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설명하셨다는 점을 강조하며 머리말을 끝맺습니다.
Ⅲ. 적용, 결단 및 기도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곧 하나님이시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생명과 빛, 은혜와 진리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 예수님,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게 하시고, 제 삶이 그 참 빛 되신 예수님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아멘.
Ⅳ. 더 깊은 묵상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아멘.
참고: Bibleworks 10, ESV 스터디바이블(요한복음), 개혁주의스터디 바이블(요한복음), 맥아더 성경주석(요한복음), 매튜헨리 주석(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36(요한복음), 관주해설 성경(대한성서공회), 묵상과 설교(2026년 1-2월), 성서유니온선교회(s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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